베스트셀러 <고통의 비밀 - 몬티 라이먼> 서평, 독후감, 리뷰
통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책.
▤ 목차
만성 통증은 현대 사회의 역병
만성 통증은 현대 사회의 역병이라 표현될 정도로 만연합니다. 만성 통증은 장기간 지속되거나 재발하는 통증으로, 국제질병분류에서는 '장기간'을 3개월로 규정하고 있는데요. 대부분의 만성 통증은 특정 질환이 치유되어도 통증은 지속되는 상태로 '어떤 병의 증상이 아닌 그 자체로 질병이 된 경우'를 의미하죠. 다시 말해 초기 손상된 부위가 완치되어도 통증이 지속되는 질병을 의미합니다.
직관 혹은 경험적으로 통증은 조직 손상에 의해 나타나는 생물학적 반응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데요. 손상된 부위가 완치되었음에도 통증이 지속되는 현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죠. 할 수 있는 조치를 모두 취했고, 손상 부위가 회복되었음에도 통증이 지속된다면 그저 통증을 견뎌내는 일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당사자로서는 미칠 노릇이 아닐 수 없는데요. 이러한 만성 통증이 한국 사회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통증(M54)으로 인한 연평균 진료비가 조 단위를 넘어서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통증에 대한 오해와 진실 : 통증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
이처럼 조직 손상과 관계없이 통증이 지속되는 이유는 '통증은 뇌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인데요. 지금부터 통증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파헤쳐보겠습니다.
경험적으로 통증은 조직이 손상된 후 뇌에서 '감지'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죠. 하지만 우리 상식과는 다르게 뇌가 통증을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믿기지 않겠지만 우리 뇌에는 통증을 느끼는 통증 감각 기관이 없다는 과학적 발견이 있습니다. 즉, 조직이 손상된 후 그 신호가 뇌로 올라와 우리 뇌가 통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손상되었다는 신호가 뇌로 올라오면 뇌가 해당 부위에 통증이라는 자극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죠. 이렇게 의도적으로 뇌가 통증을 만들어 내는 이유는 "통증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이기 때문인데요. 다시 말해 통증은 조직 손상에 따른 반응이라기보다는 조직 손상에 따라 해당 부위를 안전하게 보호하라는 뇌가 보내는 신호라는 의미입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낚싯바늘에 찔린 예시를 살펴보죠. 우리 머릿속에는 '경호 팀'이 있는데요. 우리 몸을 보호한다는 최종 목표를 가진 이 팀 아래에는 여러 팀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어떤 팀은 시각, 촉각, 후각과 같은 일상적인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어떤 팀은 감정, 경험, 집중, 신념, 예측 등의 영역을 책임지죠. 이들은 각기 다른 책임을 맡으며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의견을 교환하는데요. 해변에서 달리기를 하다 낚싯바늘에 찔리게 되면 촉각 팀은 경호 팀에게 이상한 신호가 감지되었음을 알리게 됩니다. 하지만 멋진 해변을 달리고 있는 경우 자연의 웅장함에 시각이 압도될 것이고, 우리 감정을 고양될 것이며, 달리기 페이스를 맞추기 위해 집중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경호 팀에서는 시각, 감정, 집중 영역 의견에 주의를 기울일 뿐 촉각 의견은 무시될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는 조직이 손상된 경우라도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잠시 후 시각 팀에서 흐르는 피를 발견하게 되고, 그 의견을 수렴한 경호 팀은 모든 것을 멈추고 피가 나는 원인을 찾으라고 명령하는데요. 그제야 낚싯바늘에 찔린 사실을 알게 되고, 경호 팀은 통증이라는 위험 신호를 내보내기 시작합니다. 이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죠. 이와 비슷한 경험으로 종이나 날카로운 물건에 손이 살짝 베였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한참 후 손을 씻거나 하는 행동을 통해 뒤늦게 발견하고 그제야 쓰라림이 느껴지는 경험 한 번쯤은 있을 텐데요. 이렇듯 '통증은 몸을 보호하라고 의식적 자아에 요구라는 경호팀의 명령'과도 같은 것입니다.
만성 통증 작동 원리 : 신경 가소성
이렇게 통증의 진실을 이해하고 나면 조직 손상 없이도 통증이 지속될 수 있음을 조금은 납득할 수 있게 됩니다. 손상은 치유되었지만 뇌에서 계속 통증을 만들어 내게 된다면 그것이 '만성 통증'이 되는 것이죠.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경보를 발령하는 뇌의 오작동'이라고 이해하면 되는데요. 이러한 오작동은 '신경 가소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위험 신호는 말초 신경에서 척수 신경을 거쳐 뇌로 전달되는데요. 신경이 강렬하고 오래 활성화되어 자극에 대한 반응이 더 커지게 되면 초기 손상이 완전히 회복된 후에도 척수에는 '통증 기억'이 남게 됩니다. 통증이 반복되어 뇌가 통증을 더 쉽게 인식하게 되면 통증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이를 '통증 가중'이라고 하는데요. 이로 인해 '뇌에서 나온 자극은 척수로 내려가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시냅스의 힘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게 되죠. 이런 식으로 특정 시냅스를 강화, 약화하는 방식으로 우리 뇌 신경회로는 재구성됩니다. '간단히 말해 뇌 회로는 많이 쓸수록 더 강화되고 쓰지 않으면 약해'지게 되는데요.
통증이 습관으로 뇌에 각인되면 해당 시냅스는 계속 강화될 것이고, 초기 통증 원인이 사라진 후에도 뇌 신경 가소성에 의해 통증이 계속 남아 있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만성 통증의 작동 원리인데요. 초기 원인과 관계없이 뇌 회로의 변화로 통증이 지속되는 학습된 통증에 고통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만성 통증은 신경 가소성에 의해 통증을 일으키는 것이기에 피상적인 접근으로는 치료할 수 없죠. 만성 통증의 작동 원리와 동일하게 신경 가소성을 이용해 통증을 치료해야 합니다.
만성 통증 환자가 늘어나는 이유
뇌를 재구성해야 만성 통증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볍게 여길만한 질병이 아닙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 환경'이 만성 통증을 유발하면서 만성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요. 전 세계 인구의 약 20%, 약 15억 명,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약 10%가 만성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하죠.
저자는 현대 사회를 '통증이 증식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이는 통증이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에 따라 폭넓게 영향을 받기 때문이죠. 통증은 생물학적 요인이 아닌 사회적 고립, 불평등과 같은 심리, 정서적 경험에도 영향을 받는데요.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고, 디지털 문화가 사회 깊숙이 스며들면서 1인 가구, 혼자 만의 시간에 익숙해지면서 사회적 상호작용도 급격하게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우리는 외로움, 불안감, 우울감과 같은 심리, 정서적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죠. 이 같은 심리, 정서적 스트레스는 통증 유발의 주요 원인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불확실성, 불안감의 증가,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진 식습관의 변화, 좌식 문화, 현대인의 운동 부족 문제 등과 같은 사회적 요인에 따른 만성 스트레스, 만성 염증 반응 증가도 만성 통증 유발 주요 요인입니다. 또한 고령화 사회, 대사 증후군, 수면 부족도 만성 통증 환자를 증가시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하는데요.
이처럼 생물학적 요인 외에도 현대 사회가 유발하고 있는 심리, 정서적 요인, 사회적 요인으로 만성 통증은 현대 사회의 역병이 되어버렸죠. 통증이 물리적 손상 외에도 심리적, 사회적 요인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 놀라우며, 통증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쉽게 말해 외롭거나 스트레스가 많으면 통증이 더 커진다는 의미이고, 이로 인해 만성 통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의미인데요.
마무리
만성 통증으로 심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은 통증 없는 삶이 축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통각증도 결코 좋은 삶이 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하는데요. 선천적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무통각증을 앓는 사람들은 대부분 10대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물론 그 이상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흔한 경우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요. 이는 "통증은 우리의 목숨을 구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약하고, 세상은 '단단하고 날카롭고 뜨거운' 것으로 인간을 공격하죠. 이러한 공격에 손상을 입었을 때 통증이라는 '경보장치'가 우리를 '보호하고 생존 기회를 높여'줍니다. 하지만 무통각증을 앓는 사람들은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시각, 후각, 청각에만 의존하여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만약 맹장이 터지거나, 뇌출혈처럼 시각, 후각, 청각 같은 감각으로 발견이 어려운 신체 내부적 문제에는 전혀 손을 쓸 수 없죠. 조직 손상에 대한 '경보장치(통증)'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선천적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단명한다고 하는데요.
따라서 통증으로 고통받을 때도 있지만, 혐오의 대상으로 여길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저자는 "단기 통증은 확실히 우리에게 좋은 것이고 우리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통증이 습관으로 자리 잡는 것(만성 통증)은 경계해야 하지만 통증이 우리 몸을 보호하라는 신호로 작용한다는 측면에서 우리의 생명줄과도 같은 것이죠.
이 책은 통증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며, 통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합니다. 통증이 달가운 증상은 아니지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통증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보다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12장에서는 통증 치료 혁명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으니 통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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